수집/에세이
삶을 견디는 기쁨 [헤르만 헤세] 정리
이것이 무엇인가
2024. 5. 6.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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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견디는 기쁨
책 소개 밤을 비추는 등대의 불빛 같은 글, <삶을 견디는 기쁨〉 고향, 자연, 예술에 대한 뜨거운 고백을 담은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집 〈그리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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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 유혜자 ] ]
- <삶의 고통과 슬픔을 이기고 무의미에 맞서는 법> 에서 헤세는 '삶을 견디는'이라고 이 책에 제목을 붙였지만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삶은 견디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도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구나 만끽할 수 있는 삶의 기쁨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짊어져야 할 고통을 이겨 내는 방법을 제시하려고 했던 것 같다. "행복과 고통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이며 우리 삶의 전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을 이겨 내는 방법을 아는 것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것이라는 말과 같다. "고통은 사람을 부드럽게도 만들고, 강철처럼 단단하게도 만들어 준다." 그는 고통의 의미를 그렇게 해석하면서 고통이 사람을 부드럽게 만들고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든다고 했다. '덧없고, 잔인하고, 어리석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가르쳐 주는 그의 충고는 따뜻하고, 전략적이다. 그는 삶의 잔혹함과 죽음을 회피할 수 없음에 불평하지 말고, 그런 절망감을 몸으로 느끼면서 받아들일 것을 충고했다. 자연의 추함과 무의미함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가 그것에 맞설 수 있고,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본것이다. 그는 그것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 가운데 최고의 것이고, 또한 유일한 일이라고 했다.
[인상깊은 문장]
-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의 기쁨을 방해하는 가장 위험한 적이다. 적당한 쾌락을 즐기는 것이야 말로 삶이 주는 맛을 이중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기쁨을 간과하지 말라는 조언도 꼭 하고 싶다. 결국 내 말의 핵심은 '절제' 이다.
- 절제된 행동 습관은 '사소한 기쁨을 내면에서 맛볼 수 있게 해 주어 쾌락을 만끽하도록 만들어 주는 능력이다.
- 기쁨들 중 가장 으뜸은 우리가 날마다 자연을 접하면서 맛보고 누리는 즐거움이다. 아침마다 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을 가지면 어느 날 문득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공기를 느끼고, 잠에서 깨어나 일터로 향하는 도중에도 신선한 아침의 숨결을 맛볼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하루하루 살면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소한 일들과 그로 인해 얻은 작은 기쁨들을 하나하나 꿰어 우리의 삶을 엮어 나간다. 날마다 벌어지는 사소한 기쁨들을 가능한 한 많이 경험하고, 거창하고 짜릿한 쾌락은 휴가를 즐길 때나 특별한 시간을 보낼 때 조금씩 맛보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지친 몸을 추스로고, 일상의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거창한 쾌락이 아니라 사소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 우리에게 인간성은 사치가 아니라 존재를 위한 필수 조건이며, 삶을 위한 공기이고,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자산이다.
- 내가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란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 자기가 쓰는 힘의 근원을 알고 그 위에 자신만의 고유한 법칙을 쌓아 올리는 것을 꼭 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말한다.
- 고통을 겪고 있는 시기에는 나는 오랜 전통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히고, 누구에게나 잘 알려져 있는 무위의 예술을 간절히 그리워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이 방법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은 경험을 정리해 보겠다.
- 어느 날 특별한 생각 없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읽다가 처음에 얼마간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있다가 그것을 반납할 시간이 다 되었을 즈음에 두 권 다 재미없다는 생각을 했다.
-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나는 책이란 자리에 눕거나 바닥에 앉아 읽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단 그런 생각을 하고 나자 눕거나 주저앉아 있으면 공간과 사물에 대한 내 시각이 완전히 변한 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는 책을 직접 읽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읽으면 동양적인 분위기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 마침내 합리적인 행동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곧 체념 어린 관람자의 감정을 만들어 내고, 그것은 잠시 후 아무런 작품을 만들어 내지 않더라도 수시간 동안 조용하게 꼼짝도 하지 않을 수 있게 해 주고, 아주 작게 보이는 사물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 준다. (햇살 속에 보이는 아주 미세한 물질의 움직임, 광선의 흐름 등등). 그런 것을 보다 보면 주변에서 얼마나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놀라게 되고, 마음에 안정을 되찾으면서 나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느 기초가 만들어지고, 절대로 지루한 시간들이 우리를 지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시작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통해 의식이 깨어 있는 생활을 벗어나 예술가에게 꼭 필요하고 도달하기 힘든 자아 망각의 시간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잠은 자연이 주는 귀중한 선물이자 친구이며, 피난처이고 마법사이자 나를 따스하게 위로해 주는 손길이다.
- 몸을 아프게 하는 병과, 치료가 되기까지 오래 참아야 하는 기다림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를 훌륭하게 가르치며 이끌어 주는 스승이다.
- 삶이 힘겨울 때에는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 정신적 혹은 이상적인 것들에 대해 개인들이 저마다 맺고 있는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비록 맛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외적인 삶을 익숙하게 뒷받침해 주던 것들이 사라지거나 파괴되었을 때 그것들은 비로소 진가를 드러낸다. 희귀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큰 시험에 처해서야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것을 취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 문화는 벌거벗은 삶에서 종교와 예술과 철학을 뛰어 넘는 영적인 가치를 찾아야겠다는 인간의 필요성의 의해 발견되고 만들어졌다. 그 모든 것들이 인류의 정신적 자산으로 불리는 ‘문화’이다. 인간의 이상적 자산은 유지, 보존, 증폭되었다. 그런 이상적 자산의 내면을 소유하고 있는 자는 절대로 파괴될 수 없는 영혼의 결합을 이룬 사람이며, 그것을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사람이다.
- 궁핍하고 고통스러운 시기만이 진정한 우리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를 떠나지 않고 충실하게 남아 있는지 알 수 있다.
- 문화라는 재산은 그저 돈을 내면 살 수 있고, 돈을 낸 만큼 이용할 수 있는 그런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 개인이 사회를 존중하고 사회를 위해 희생할 자세가 되어 있으며 사회가 그 사람을 지지하는 것처럼, 사회는 모든 인간과 민족에게 그저 알면서 그것을 이용하고 즐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수용하고 신뢰하며 나아가는 공동의 문화를 요구한다. 우리 내면으로 그것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문화적 재산을 진정으로 공유하는 사람이 된다. 단 한번만이라도 숭고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거나, 어떤 사상을 위해 자신의 고집을 꺾어 본 사람은 문화를 그저 즐기기만 하는 부류에서 벗어나 어떤 상황에서도 정신적인 자산을 소중히 생각하며 그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 사람이다.
-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아무 걱정거리가 없이 천진난만하게 자라나는 어린이는 그런 무미건조한 일상이 반복되더라도 아무런 고통을 받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사소한 일도 즐거워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특별한 다른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당연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잠깐이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따위는 한순간도 할 수 없는 삶의 순간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 시간을 창조적인 순간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창조주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받고,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도 어떤 깊은 뜻이 있어서 이뤄진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의 끝없는 사색과 철학적 사고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한 가지 만큼은 확실히 안다. 아무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기쁨의 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축복 받은 순간과 천국이 있다면 그때 만큼은 아무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기쁨의 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과 아픔을 통해 그러한 축복을 쟁취할 수 있다면 그때의 고통과 아픔은 도망쳐 버리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킬 만큼 엄청나게 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하늘이 있는 풍경으로 더 자주 시선을 옮기고, 나무가 있는 자연으로 더 자주 발걸음을 하며,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더 확보하며, 아름다움과 거대함의 비밀을 느낄 수 있도록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말이다.
- 행복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단어일 뿐이며 그 안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 그저 그것은 다른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이때까지 지내 오면서 나는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 모든 소원을 접어 두고 어떤 목표나 열망을 알지 못하고 행복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으면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고, 당신의 영혼은 쉴 수 있게 되리라. - 인생은 덧없고, 잔인하고, 어리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하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영혼을 비웃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간을 지렁이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하필이면 인간이 자연의 잔혹한 장난감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너무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삶의 잔혹함과 죽음을 회피할 수 없음을 불평불만하지 말고 그런 절망감을 몸으로 느끼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의 무시무시함과 무질서함을 자기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그런 거친 자연의 모습에 맞설 수 있고, 그곳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써 노력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 가운데 제일 뛰어난 것이며,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 네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나는 고통스럽다. 고통은 네가 막아 내려고만 하기 때문에 아픔을 주고 네가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고만 하기 때문에 너를 쫓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도망치지 말고, 변명하지 말며, 무서워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것을 사랑하라. 아픔을 주는 것은 다른 것에 있지 않다. 그것을 거부하는 마음이 네게 아픔을 줄 뿐이다.
- 기억과 꿈,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들의 근원이 무엇인지 찾고, 심리 분석적 방법을 진지하게 고찰해 본 사람은 ‘자신의 무의식 세계와 맺어진 내면의 관계’라고 할 만한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는 더 따뜻하고, 보람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무의식의 세계와 의식을 세계를 오가며 삶을 영위한다. 자신의 ‘밑에 잠겨 있는 것’을 끌어 올리고, ‘무심하게 지나친 꿈에 보이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점점 고립되는 것 같지만 물러서지 않고 계속 전진하고, 인습이나 전통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질문과 의심을 갖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이뤄져야만 세계의 한 부분일지라도 진정으로 체험하고, 거기서 전해지는 생생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힘든 시기에는 자연으로 나가서 수동적이 아닌, 적극적인 자세로 그것을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약이 없다.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표현해 보아야 한다.
- 인간은 수많은 것들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아픔, 다른 사람의 판단, 자기 자신의 마음, 잠드는 것과 깨어나는 것, 혼자 있는 것, 추위, 광기, 죽음에 대해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가면에 불과하다. 실제로 사람이 두려움을 갖는 대상은 한 가지뿐이다. 몸을 내던지는 것,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 안전했던 모든 것을 뿌리치고 훌쩍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진 경험이 있는 사람, 그렇게 큰 믿음을 경험하고 운명을 철저하게 믿은 사람은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지상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우주에 몸을 던져 천체의 흐름에 몸을 맡길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어서 어린 아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 세상은 언제나 다시 태어나고, 또 날마다 죽는다. 모든 생명은 신이 내뱉는 호흡이며 모든 죽음은 신이 들이마시는 숨결이다. 몸이 무너지는 것을 애써 거부하지 않은 사람은 쉽게 죽고 쉽게 태어날 것이다.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두려움에 떨고 힘들게 죽으며 마지못해 다시 태어나게 된다.
- 목표는 두려움을 낳는다. 목표 자체가 착각이기 때문이다. 신의 곁에 머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휴식도 없다. 다만 영원히 황홀하고 성스러운 심호흡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형상을 만들고 다시 풀며, 탄생과 죽음, 떠남과 되돌아옴이 쉴 새 없이 반복된다. 그래서 몸을 내던지며 신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그 어떤 것에도 매달리지 않으며 선한 것이나 악한 것에 다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비밀, 가르침, 예술이 된다. 그렇게 하면 사람은 해방된다.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 물로 이루어진 호수처럼 우리의 자아 혹은 우리의 정신 역시 수천, 수백만 개의 분자, 즉 끊임없이 성장하고 교체되며, 무언가를 소유하고 기억하며 표현하려는 욕구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에서 우리의 의식이 보는 부분은 좁은 수면뿐이다. 정신은 수면 밑에 펼쳐진 무한하게 넓은 부분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넓고 어두운 공간을 벗어나 좁은 수면의 밝은 부분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교체가 진행되는 정신은 풍부하고 건전하며 다행히도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도 없이 많은 생각들을 마음속에 품는다. - 유쾌함이란 장난이나 자만심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서, 인간의 가장 고귀한 인식이자 사랑이며 모든 현실을 긍정하고 모든 나락과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깨어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성인과 기사의 미덕이며, 방해할 수 없고 나이가 들어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계속해서 줄어드는 것이다. 시인이나 음악가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그의 어둠이나 고통 혹은 근심이 아니다. 그들은 순수한 빛, 즉 영원한 유쾌함 가운데 한 방울을 우리에게 나누어 준다. 모든 민족과 언어가 신화나 우주진화론 또는 종교에서 세계의 깊이를 재려고 아무리 애써 봐도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이자 최고의 경지는 바로 그 유쾌함이다.
- 신이 생각했으며 여러 민족의 문학과 지혜가 수천 년 동안 이해해 왔던 인간은 자신에게 쓸모가 없는 것일지라도 그것에 대해 기뻐할 줄 아는 능력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기관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기쁨에는 항상 정신과 감각이 똑같이 관여한다.
-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는 일과 돈이 유일한 우상인 것과 반대로 찰나적인 유희를 즐기는 성향이나 우연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 변덕스러운 운명에 대한 신뢰가 더 필요하다. 우리 모두에게는 바로 그와 같은 것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
헤르만 헤세의 책은 언제 읽어도 좋다.
왜 좋은지 모르지만 읽다 보면 계속 읽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삶을 살아간다. 소소한 기쁨, 사소한 기쁨, 절제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근본이다.
잠을 자고 내면의 감정과 생각들을 돌볼수 있는 여유를 갖고 살자.
고통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삶의 일부로서 살아간다.
우리가 많은 행복을 원하고 절제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면
그 행복은 우리에게 고통을 가지고 온다.
절제하고 소소한 일상 과 자연의 거대한 축복에 감사하자.
자신에 대하여 항상 고민하고 자연을 마음속에 진정으로 받아들이면
자연과 인연이 주는 시련에 맞설수 있고, 그곳에서 의미를 찾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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