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23. 23:28ㆍ수집/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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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
『내면소통』 김주환 교수의 번역으로 만나는 알아차림 명상 세계적 명상가 루퍼트 스파이라의 “자아 탐구”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알아차리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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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문장>
진정한 평온함과 행복이란 마음이 외적인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향하도록 해야, 즉 마음의 본성을 탐구해야지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평온함과 행복이 우리 자신의 본질이라면, 왜 우리는 항상 평온함과 행복을 경험하지는 않는 것일까요?
행복이란 우리의 본성이며,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마음의 원천에, 우리 자신의 핵심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드러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대상적 경험의 일종으로 행복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행복은 우리의 본래적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행복 그 자체가 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불행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알아차리는 게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또는 경험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지에 대해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은 채 평생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마음은 알아차림이 몸의 한계, 몸의 운명을 공유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알아차림이 몸의 속성과 한계와 혼합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개별적 자아인 에고가 생겨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개별적 자아가 곧 자신이라고 착각하게 되지요.
알아차림 그 자체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알아차림이 세상에 대한 앎과 경험에 충만해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물과 실체의 존재의 유일한 근원이 알아차림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알아차림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이미 내재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알아차림이 몸 안에 있고, 따라서 몸이 지닌 한계와 운명을 공유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몸이 태어날 때 알아차림이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몸이 늙고 병이 들 때 알아차림도 늙고 병이 든다고 생각합니다. 육체가 죽고 사라지면 알아차림도 죽고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알아차림은 스스로의 등장과 사라짐, 즉 시작과 끝, 탄생과 죽음을 결코 경험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있다고 주장하려면 알아차림은 스스로가 나타나거나, 시작하거나, 탄생하기도 전부터 존재해야 하겠지요. 또한 스스로가 사라지거나, 끝나거나, 죽은 후에도 존재해야만 하겠지요.
우리의 진정한 본질을 망각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심리적인 괴로움의 원천이 됩니다. 이와 반대로 우리의 본모습을 기억 하는 것 즉 자아 그 자체에 대한 기억이나 인식은 모두가 갈망하는 평온함과 행복의 원천입니다.
알아차림에 대한 인식, 즉 알아차림이 스스로를 아는 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늘 볼 수 있던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새롭거나 특별한 종류의 경험이 아닙니다. 경험 자체의 본질이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죠.
알아차림은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식될 뿐입니다.
“나는 알아차리고 있는가?Am I aware?”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보통 무언가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알아차림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앎의 빛을 대상적 지식이나 경험으로 향하도록 합니다. 반면 “나는 알아차리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은 마음을 대상이 없는objectless 방향으로 이끄는 신성한 물음입니다.
모든 수행의 방식에는 각기 장점과 잠재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헌신의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헌신의 대상을 놓아버리는 것이 궁극적인 굴복입니다. 지식의 방식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주의의 집중 혹은 마음의 제어를 놓아버릴 수 있느냐가 마지막 관건이 되겠지요.
주체와 대상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주체와 대상은 각각 독자적으로 생겨나거나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경험의 개별적인 주체인 마음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외관상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경험의 개별적인 대상 또한 반드시 사라져야만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의 주체와 사랑의 대상이 모두 사라져야 경험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리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 다시 말해서 자기 안에서 자기로서 머무르고, ‘아이엠’ 안에 휴식하며, 신의 존재를 실천하는 것. 이것만이 경험의 개별적인 주체인 에고를 사라지게 하는 유일한 형태의 명상이자 기도이며, 최고의 궁극적인 명상이자 기도입니다. 다른 모든 형태의 명상은 바로 이 궁극적인 명상을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합니다.
인도의 현자 아트마난다 크리슈나 메논Atmananda Krishna Menon, 1883~1959은 자신의 진정한 본질에 안착하게 되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생각, 감정, 감각, 지각에 더 이상 이끌리지 않게 되었을 때입니다.”
평온함과 행복을 모색하는 마음과 사랑을 갈망하는 심장은 그 정수 안에서 가라앉거나 녹아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죽기 전에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개별적인 자아가 존재할 여지는 없습니다. 그저 영원하고 무한한 알아차림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본래적인 평온함과 무조건적인 충만함 속에서 편안히 쉬는 존재…. 스스로를 알고,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존재뿐입니다.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림으로써, 즉 우리 자신이 본질적이고도 환원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고 심장은 갈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불안과 갈망이 사라지고 난 그 자리에 남게 되는 것에는 무어라 이름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이름이란 앎과 경험의 대상에 대한 언급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모든 마음이 찾아 헤매는 것이며, 모든 마음이 갈망하는 것입니다.
<정리>
우리는 죽기 전에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오 하느님 부처님 부디 이 중생을 불쌍히 여기사 부디 죽기전에 반드시 죽을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 부디 이 행복과 평온함을 모색하는 마음과 사람을 갈망하는 심장을 죽일 수 있게
부디 이 모든 인연을 위하여 헌신하는 삶을 살수 있게
부디 삶의 인연을 통하여 모든 인연들이 알아차림을 알아차릴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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