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1. 09:23ㆍ정리/마음공부
명상은 무엇일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앉아서 눈을 감고 가부좌를 하고 내 몸의 호흡을 관찰한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명상의 모습이다.
하지만 참된 명상의 방향은 무엇일까?
나는 앉아서 눈을 감고 가부좌를 하고
내 몸의 호흡을 관찰하거나
특정한 주제에 대하여 생각하면
잠에 많이 들었다.
일어나면 개운했다.
명상은 무엇이고
명상의 목적은 무엇일까?
명상은 정답이 없다.
명상의 목적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아디야 샨티는 참된 명상을
알아가기 위한 자신의 경험을 알려준다.
물론 자신이 경험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P19] 나는 자리에 앉아, 나의 경험이 그저 존재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며, 내면 깊이 그렇게 했다. 경험을 통제하려는 노력도 놓아 버리리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참된 명상'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어떤 기법이나 수행에 통달하려는 노력으로부터, 기법과 수행을 실제로 놓아 버림으로의 전환- 이 내게 명상에 참여하는 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P28] 참된명상이란 어떠한 기법에 숙달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명상이다.
[P29] '참된 명상'에서 내가 제안하는 바는 직접 실제로 보라는 것이며, 하나의 탐구 방법으로서 명상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것은 통제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기 시작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 자기의 몸에서, 자기의 마음에서, 자기의 권위에 근거하여, 자기의 경험에 근거하여- 스스로 탐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당신이 경험하는 것을 달리 변화시키려는 노력없이 정확히 있는 그대로 내버려둘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참된 명상은 기법이 아니며, 실제로는 하나의 탐구 수단이다. 우리가 통제와 조작을 실제로 포기할 때 무슨일이 일어나겠는가?
참된 명상은 무언가에 상을 짓지 말고
무언가를 추구하거나 노력하지 말고
그냥 자기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마음이 마음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마음을 생각으로 바라보면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생각은 마음을 바라보겠다는
노력, 추구, 통제를 한다는 생각이다.
아디야 샨티는 명상의 또 다른 측면을 이야기 한다.
[P30] 참된 명사의 두번째 측면은 명상적 자기탐구이다. 명상적인 자기탐구란 명상 상태에 있는 마음에 질문을, 강력하고 중요한 영적 질문을 제기하는 수행이다.
[P30] 우리가 물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질문은 그저 나는 누구인가? 명상하는 자는 누구인가? 라고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은 경험을 통제하려 애쓰는 에고를 계속해서 약화시킨다.
[P31] 명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명상하는 자를 넘어서는 것, 즉 에고 또는 마음을 초월하는 것이다. 명상하는 자가 통제하고 있는 한, 마음 또는 에고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참된 명상에서는 명상하는 자를 포기하는 수행을 한다.
나는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자기 탐구 질문을 많이한다.
나는 명상적 자기탐구를 하다보면
이런 기법들이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P34] 내가 자주 목격한 사실은,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이런 오래된 전통들과 기법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표 자체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P34] 영성이란 결코 호흡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다. 영성이란 (모든 것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분리의 꿈에서 (모든 것이 하나라는) 하나임의 진실로 깨어나는 것이다. 영성이란 그런 것이자만, 우리가 기법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릴 수 있다.
[P34] 내가 항상 제안하는 점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호기심으로 가급적 빨리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마음에 대한 통제로 부터 참된 명상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통제를 포기할수 있을 때, 포기해야 할 때, 그 전환의 시기가 더 빨리 온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참된 명상의 자세를 알려준다.
"참된 명상은 사실 우리와 늘 함께하는 어떤것" 이란 사실은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참된 명상을 할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P65] 참된 명상은 사실 우리와 늘 함께하는 어떤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참된 명상을 할 수 있다. 친구나 애인을 만날 때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실험 해 볼 수 있다. '내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완전히 허용하면서 만나면 어떻게 될까?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완전히 허용하면 어떻게 될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의 관계는 어떨까? 따라서 참된 명상은 매우 적극적인 명상, 깊이 참여하는 명상일 수 있다. 명상은 조용한 곳에 앉아 있을 때에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에 눈을 뜨게 되면, 우리는 영성과 우리의 일상생활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 모든 것은 온통 하나인 영의 나뉨없는 표현이다.
그리고 참된 명상을 할때 빠지기 쉬운
문제점에 대하여 친절하게 이야기 해주고 있다.
[P104] 부디 이것을 마음으로 이해하려 하지 말기 바란다. 이것은 정말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앎은 우리 내면의 더 깊은 지점, 더 깊은 자리에 존재한다. 다른 무엇이 이해하고, 다른 무엇이 안다.
[P108] 내가 그것을 명상적 자기탐구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것이 매우 경험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철학적인 것이 아니다. 지적인 것도 아니다. 여기서 '명상적'이라는 말은 '경험적'이라는 뜻이다. 탐구는 오로지 명상적일 때에만, 즉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꾸준하고 집중적이고 고요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에만 힘이 있다.
[P109] 나는 권유한다. 언제나 더욱더 깊이 쉬고, 어떤 통찰이나 경험을 붙잡으려 하지 말고, 고수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대신에 항상 밑바탕에 있는 실재를, 결코 변하지 않는 그것을 인식하기를 --- 20세기의 위대한 인도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는 "오는 것은 오게 놓아두고, 가는 것은 가게 놓아두어라. 그리고 변함없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라."고 말했다. 명상적 자기 탐구는 변함없이 남아 있는 것, 언제나 있는 것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리 및 당부를 하면서 마친다.
[P113] 진정한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영성의 핵심이다. 나는 깨어남에 이르는 가장 유용하면서도 강력한 두 가지 요소를 발견했다. 첫째는 명상적인 태도를 개발하는 것이다. 명상적인 태도란 아주 깊은 수준에서 통제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 자신의 타고난 호기심과 지성을 가지고 명상적 자기탐구에 진지하게 몰두하는 것이다. 이 둘을 함께 결합할때 우리의 참된 본성을 섬광처럼 인식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필요한 추진력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영성에 관한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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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야샨티의 참된 명상 - 예스24
이것이 진정한 명상이다! 서구 영성계에서 차세대 지도자로 각광 받고 있는 아디야샨티가 ‘참된 명상’이란 무엇인지를, 어떤 명상이 정말로 내면을 변화시키고 진리에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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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 예스24
1998년 11월 첫 출간된 이후 그동안 오탈자 교정, 표지와 본문 형식 교체 등 세 번의 개정을 거쳤다가 이번에는 완전히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대대적인 광고나 서평의 후광 없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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