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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수행을 말하다 - YES24
“이 책은 불교의 모든 경전과 논서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열쇠이다.”시간을 뛰어넘은 영원한 고전과 달라이 라마의 만남 1989년 인도와 티베트 국경에 있는 마날리에서 달라이 라마는 8세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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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이 세상의 중생들을 위해
최상의 견줄 데 없는 보리심을 얻고자 한다면
그 보리심의 뿌리는
산들의 제왕 처럼 궅센 중생을 위한 보리심의 발원과
모든 곳으로 뻗는 연민의 마음과
이원성에 의지하지 않는 지혜이다.
수행의 단계에서는 소승과 대승 불교 양쪽 수행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다. 세속적인 보리심을 수련하는 방법과 사마타와 위빠사나에 무게를 두고 육바라밀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육바라말은 보살 수행의 기초를 형성하는 여섯 개의 수행법으로 보시, 지계, 인용, 정진, 선정, 반야바라밀 이다.
이 원인들과 조건들 중에서도 반드시 올바르고 완벽한 원인들을 닦아야 한다. 만일 올바르지 않은 원인들을 닦는다면, 그대가 아무리 열심히, 오랫동안 수행한다 하더라도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소의 뿔을 짜서 젖을 얻으려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모든올바른 원인들을 닦지 않는다면, 결과가 일어날 리 없다. 예를 들어 씨앗 등의 마땅한 원인이 없다면, 결과인 싹은 발생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그 올바르고 완벽한 원인들과 조건을 닦아야만한다.
깨달음은 연민을 뿌리로 하여 일어나며, 보리심을 원인으로 일어나며, 방편으로 완성된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연민, 보리심, 그리고 방편 이 세가지를 수행해야만 한다.
연민을 수행하는 순서는 우선 평등심의 수행을 통해서 모든 중생에 대한 화와 집착을 없앨 수 있다.
연민은 중생을 관찰 대상으로 삼는 연민, 현상을 관찰 대상으로 삼는 연민, 그리고 지각할 수 없는 것을 관찰 대상으로 삼는 연민이다. 즉 중생을 관찰함으로써 일어나는 자비는 중생의 고통을 그 대상으로 하며, 현상을 관찰함으로써 오는 자비는 무상함을, 그리고 보이지 않는 현상을 관찰함으로써 일어나는 자비는 중생의 무자성성을 그 대상으로 관찰하여 일어나는 자비이다.
우선 괴로워하는 존재들에 대하여 자애의 마을을 개발하고, 다음으로 괴로움의 본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모든 생명을 위해 진실한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려거든 우선 평등심의 자세를 닦아야 한다. 평등심이란 모든 중생에게 차별을 두지 않고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집착과 연민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연민은 뭇 생명이 겪고 있는 괴로움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고 싶다는 열망을 그 동기로 삼는다.
평등심을 기르는 데에는 두가지 주요한 방법들이 있다. 첫번째는 관계의 불확실성, 무상함 그리고 괴로움에 대해서 생각하고, 몇몇 사람들에게 집착하고 다른 이들을 미워하는 것이 가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모든 중생이 행복을 바라며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동등하다고 보아 모든 생명에 대한 무차별한 태도를 기르도록 애쓰는 것이다.
모든 중생에 대한 평등심을 수행한 다음 자애를 수행한다. 자애의 물로 마음을 적셔 금이 뭍혀 있는 땅처럼 소중히 여겨 연민의 씨앗을 심으면 금방 풍성해질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나서 자애로 마음을 닦은 뒤, 연민의 수행을 한다.
작고 귀여운 어린아이가 고통을 겪을 때 괴로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내가 아끼는 이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랄때 저절로 일어나는 연민이 모든 중생에 대해 동등할 때 연민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며 이렇게 해서 크디큰 연민(대비심)을 성취한다.
허공이 다할 때 까지 중생이 남아 있는 한
나 역시 이곳에 머물며 이세상의 괴로움 없앨 수 있기를
보살의 삶은 어떠한 것일까? 모든 종류의 보살행들은 방편의 수행과 반야의 수행이라는 두가지 큰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보시바라밀, 지계바라밀 등의 수행을 성취했다면 그것은 반야바라밀의 수행이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반야바라밀의 수행 없이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의 다섯 가지 바라밀들은 진정한 바라밀행이 될 수 없다. 반야를 닦기 위해서는 반드시 올바른 교리적 시각인 중관(중도) 의 철학적 견해를 먼저 성취해야 한다. 무아, 무자성, 연기법, 공성, 무명 그렇지만 공성과 무아의 도리를 이해했다고 해서 모든 번뇌를 무찌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마타 명상과 위빠사나 명상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마타는 하나의 대상에 오로지 집중하는 명상이다. 위빠사나는 대상에 대한 분석적인 인식을 말한다. 이 둘을 함께 닦음으로써 방편과 반야 모두의 올바른 결과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연기하여 일어난 현상은 소멸하지도 않으며, 발생하지도 않으며, 단별하지도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으며
오는것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니며, 다른 대상도 아니며, 동일한 대상도 아니며.
희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며, 적멸한 것이라고 가르치신 스승 가운데 최상이신
올바른 깨달을을 성취하신 분 붓다께 귀의합니다.
사마타의 수행의 선결조건은 1)수행에 적합한 곳에 머물고, 2)욕심을 줄이며, 3)만족할 줄 알아야 하며, 4)잡다한 행동을 삼가하고, 5)계를 항상 청정하게 하고, 6)욕심 등의 망상분별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계율을 청정하게 한다는 것은 살생, 도둑질, 사음, 거짓망, 음주와 같은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위빠사나의 예비단계는 1)지혜로운 분에게 의지하는 것이며, 2)많이 배우신 분을 잘 따르는 것이며, 3)배운 바를 따라(올바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의지할 수 있는 지혜로운 분은 1) 많은 가르침을 배우시고, 2) 명료하게 가르치시며, 3)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계시며, 4) 역경을 인내할 줄 아시는 분이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좌복에서 비로자나 부처님의 결과부좌와 같이 앉지만, 반가부좌도 괜찮다. 눈은 지나치게 부릅뜨거나 지나치게 꼭 감지 않으며 , 코끝을 응시하듯 한다. 몸은 너무 웅크리지 않고 너무 구부리지 않으며 꼿꼿하게 바로 펴고 않아 내면에 주의를 집중하여 모문다. 그러고 나서 어깨를 평평하게 하고, 머리를 지나치게 세워 들거나 떨어뜨리지 않고 측명으로 기울어지지도 않게 한다. 코에서 배꼽의 중심이 일직선이 되게 유지한다. 이와 입술은 자연스럽게 다문다 혀는 윗윔몸에 놓는다. 호흡을 할때 호흡하는 소리가 나거나. 격하게 하거나. 가쁘게 하지 않으며,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자연스럽게 들이쉬고 밖으로 내쉰다.
사마타는 마음을 한곳에 오롯이 하는 것이다. 위빠사나는 진리에 대한 올바른 관찰이다 라고한다.
사마타를 완성하고자 하는 수행자는 처음에 경과 응송 등 모든 가르침이 진여라는 진리를 향한 것이며, 진리에 도달한 것이고, 나를 진여의 진리에 도달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십이부 경전을 정리하고 이에 의식을 면밀히 집중해야 한다. 다른 한가지 방법은 다섯 종류로 모든 현상을 정리하는 오온 등에 면밀히 집중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보고 들은 불상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다.
만일 혼침과 잠이 덮쳐서 마음이 무기력해지는 것을 알아차리거나 마음이 무기력해질까 봐 두려워하느 것을 알아차린다면, 그때 최고로 환희로운 대상인 불상등이나 혹은 빛의 모습에 의식을 집중한다. 이렇게 해서 혼침을 평안하게 하고 나면 언제나 관찰 대상 그 자체에 대한 마음의 관찰을 매우 명징하게 볼수 있을 것이다.
혼침과 도거를 치료하는 것은 내적인 성찰또는 내적인 관조이다. 내적인 성찰은 마음이 명상의 대상에 안정적으로 집중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기능을 한다. 내적인 성찰이 가능하게 되면 마음이 그 대상에 아직 집중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여섯 번째 과오를 끊어 내는 방법인 명확한 앎 (정지)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내적인 성찰의 힘 역시 강해질 것이다.
보살이 반야와 방편을 서로 합하여 들어가는 길이 바로 이것이니, 일체중생에게 초점을 맞춘 대비심에 의해 꼭 붙잡혀 있기 때문에 이 출세간의 길에 의지하는 것이며, 방편을 일으킬 때는 자기가 만든 환영의 성질을 알기에 착각하지 않는 마술사와 같이 존재의 자성, 자아 등의 잘못된 견해에 전도되지 않는 즉 올바른 보시 등의 바라밀에 의지한다. 이는 보살의 방편이란 무엇인가? 반야를 구현하여 완성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평정심에 들어서, 중생들을 보는 것으로 인해 대비심의 대상 즉 중생들에게 마음을 모으는 것, 그것이 방편이다. 평정과 적정에서 평온하게 들어가는 것, 그것이 반야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항마품에서는 더불어 보살의 최상의 수행은 이러하다 반야의 지혜로 지나치게 정진하지 않지만 방편의 지혜로 일체의 선법을 모아 계합하면, 반야의 지혜로 무아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무인상과 무보특가라상을 또한 수행하고, 방편의 지혜로 모든 중생을 성숙시키는 것 역시 수행한다. 고 말씀하신다.
< 내 생각 >
그대와 이 세상의 중생들을 위해
최상의 견줄 데 없는 보리심을 얻고자 한다면
그 보리심의 뿌리는
산들의 제왕 처럼 궅센 중생을 위한 보리심의 발원과
모든 곳으로 뻗는 연민의 마음과
이원성에 의지하지 않는 지혜이다.
처음에 나오는 글이 이 책의 전부 이다. 좀더 세부적으로 보리심과 연민의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할수 있는 방편과 사마타에 대하여 잘못된 졸음과 산란함에 빠지지 않는 방법등을 통하여 선정 및 삼매에 이르고 이와 함께 위빠사나 수행을 통하여 반야지혜를 통하여 관조하는 대상에 대하여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마음을 내면서 수행에 정진할때야 비로소 깨달음에 접근하게 될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졸음과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아집, 번뇌를 없애서 마음을 적정하고 선정하게 만들어야 겠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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